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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수원 서부 지역 중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는 1921년 서울교구 갓등이(왕림)본당의 공소로
출발한 호매실 지역이었다. 흔히 ‘자리묵리’라고 불리던
이 지역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수원군 수원읍 호매실리였다.
이때의 공소 규모는 신자수 50여명이었다.
당시 서둔동은 수원군 일왕면 서둔리로서 일형면 내의 16개리 가운데
가장 주민이 많은 부락으로 ‘서둔말’ 이라 불렀다.
이 당시 가구수는 191호였다. 호매실 공소는 호매실리, 서둔말, 자목리,
금곡리 등을 관할 구역으로 하였다.
그러다가 1930년에 와서 노림공소로 바뀌었다.
이 노림 공소가 위치한 부락은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집성촌으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이들은 곳곳에 나무를 심어 정성을 다해 가꾼 결과 거목이
마을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는데,
이를 연유로 노림(老林)이라는 마을 명이 생겼다.
1923년 수원본당(현재의 북수동 성당)이 왕림 본당으로부터 분당되면서
노림공소는 수원본당 관할로 바뀌었다.
1932년 3월에는 당시 공소회장 한동수 스테파노가 본인의 대지에
건축비 전액을 부담하여 강당을 신축 하였다.
그 후 노림공소는 노림, 금곡 , 두암 등의 여러 부락에서
새 영세자가 많이 나와 금곡리에 따로 강당을 건축하고
금곡공소를 분리하였다.
이 때 금곡공소 건물은 유지문 시몬이 기증한 30평의 밭에
6칸 규모의 한옥으로 지어졌다. 이 공소 터는 후에 국유지로 편입되었다.
1963년 5월에는 (제 6대 한영수 레오 공소회장 재임 시)
금곡공소 신자들은 자력으로 102평의 땅을 사서 28평의
새 공소 건물을 건축 하였다.
『1998.12.24. "본당설정 30년 하느님과 함께"
천주교 수원교구 서둔동 순교자 성당 pp101~pp102』 |